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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의 숲
    여행 이야기 2019. 6. 29. 08:22

    어제 아내가 일찍 일을 마치는 날이라 근처 도서관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지헤의 숲에서 보내고 왔다. 도서관에 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다. 이것들 중 얼만큼을 내 마음과 몸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죽을때까지 그렇게 정진하다 가는게 참 인생인 듯 싶다. 아내와의 데이트와 덤으로 도서관에서 그리스 조르바를 다시 만났다. 

     

    이윤기님의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보았다. 관심 가는 글들을 골라 읽었다.

    그는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 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

     

    ```힌두교도들은 '구루師父'라고 부르고 수도승들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주린 영혼을 채우기 위해 오랜 세월 책으로부터 받아들인 영양분의 질량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로부터 느낀 자유의 질량을 돌이켜 볼 때마다 책으로 보낸 세월이 억울해서 나는 격분과 마음의 쓰라림을 견디지 못한다. 둘이서 벌인 사업이 거덜난 날 우리는 해변에 마주 앉았다. 조르바는 숨이 막혔던지 벌떡 일어나 춤을 추었다.

    '주여, 작고하신 우리 사업을 보오하소서 오 마침내 거덜났다'

     

    '사람을 당신만큼 사랑해본 적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은 쌓이고 쌓였지만 내 혀로는 안 돼요. 춤으로 보여드리지, 자 갑시다.'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에 대한 존경이 묻어난다 그가 묻힌 묘지의 나무 십자가 아래 묘비명을 다시 되네인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카잔차키스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의 하나인 '메토이소노聖化'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거룩하게 되기'이다.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이다. 물리적, 화학적 변화의 저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거룩하게 되기'가 바로 이것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황희 정승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듣드리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황희 정승마냥 항아이리에 술을 가득 담가 기회가 오면 항상 체로 걸려 마실 수 있어야지. 나에게 술은 지헤의 술이다. 공부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자기 발로 걷는 자가 확실히 걷는다. 약살바르게 찾아낸 지름길은 종종 먼 길이 되는 수가 있다

    잘못 든 길도 자주 가다 보면 새로운 길이 될 수 있고, 가보지 않은 길은 지도를 만든다.

     

    아내는 일을 하고, 난 이곳 저곳 둘러 봤다. 민음사 책꽂이에 있는 고전 목록을 보니 전 권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창작과 비평 코너에서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꺼내 서문과 첫 챕터를 읽었다. 1974년 서슬 퍼런 시절 글쓰기의 용기를 보여준 참 언론인이다. 읽어야 할 책 목록이다.

    아내가 목이 말라 콜드블루 밀크티를 마시다 차에서 커피를 가져 오려는데 차 열쇠가 사라졌다. 아내가 차, 화장실, 분실물 보관소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열쇠가 하나 뿐이라 난감했다. 결국 아내가 시 화장실가 가서 찾아 왔다. 요즘 들어 우리 부부에게 자주 일어 나는 일이다. 좀전에 한 일을 까맣게 잊어 버린다. 나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신 깨우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나이가 되었다보다. 순간 순간을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정작 아내와의 데이트를 빙자한 책과의 데이트를 즐긴 셈이다. 아내랑 지혜의 숲을 나오면서 노년에 큰 돈없이 즐길 꺼리가 찾아 보면 많으리란 얘기를 했다.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고, 생각을 공유하며 사는 존재가 늘 내곁에 행복하다. 늘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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